
최근 수년간 전기차 보급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전기차 화재가 3년 만에 3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전기차의 화재 발생 확률이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더 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 전 YTN에서 보도된 뉴스는 전기차 화재에 대한 일반인들의 공포심을 잘 나타냈다. 일부 공동주택 입주민 대표가 운영위원회 결정이라고 하면서,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진입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어 전기차 소유주를 압박하면서 여러 논란과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물론 전기차는 화재가 발생하면 매우 취약하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저장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열폭주 하면서 현재까지는 효율적으로 진화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전기차의 화재 발생 가능성이 내연기관에 비해 더 큰 것은 아니다. 전기차 화재와 관련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자료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2017년 1건을 시작으로 2018년 3건, 2019년 7건, 2020년 11건 그리고 2021년 23건 등으로 증가 추세인 것은 확실하다. 2023년까지 화재 건수가 총 132건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내연기관 차량의 화재는 매년 5000건 정도 발생한다. 우리나라 차량 등록 대수가 2700만 대 수준이니 대량 0.02% 수준이다.
전기차 화재의 경우, 전기차 보급 초기에는 0.002% 수준으로 일반 내연기관 차량의 화재 확률보다 1/10 수준으로 낮았다. 그런데 최근 전기차 화재가 급증하면서 실제 내연기관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배터리가 노후화되면서 피로와 배터리에 가해지는 충격이 누적되고, 조금씩 잔고장이 쌓이면서 화재 건수가 급격히 상승하는 중이다. 이제는 내연기관 차량의 화재 비율과 비슷한 0.02% 수준까지 올라왔다. 내년쯤에는 혹시 내연기관 차량보다 화재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겠으나, 현재까지는 동등한 수준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다만 발생한 화재가 2차 피해로 이어지는 측면에서 전기차가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 공포를 자아내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급증하는 전기차 화재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은 전기차 배터리 기술의 한계를 꼽는다. 배터리가 화재에 취약한 소재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나 외부 충격에 매우 민감한데도 불구하고 자동차는 고정된 것이 아닌 늘 이동하면서 외부 충격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화재예방 대책이 아직은 미흡하다. 제작사들은 충전 중에 배터리 셀의 상태를 모터링 후 위험이 감지될 경우, 전원 차단 및 차주에게 경고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마지막으로는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효과적으로 진압하는 방법이 아직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전기차 화재는 예방과 대책이 모두 미흡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18일 현대차와 기아가 소방청·한국자동차공학회·5개 대학과 ‘전기차 화재 대응 소방 기술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전기차 화재에 빠른 감지와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한 것인데, 전기차 화재예방 및 진화를 위한 원천기술 개발·현장 적용기술 개발·제도화 방안 연구 등에서 협력키로 한 것이다.
2020년 이후 전기차 화재 건수의 약 17%는 블랙박스 보조배터리, 휴대용 충전기 등 차량에 장착된 액세서리 등에서 불이 나 전기차 자체의 안전 문제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나머지 중에서 54.3% 정도가 ‘고전압 배터리’에서 발생했다. 전체 전기차 화재 중 절반 이상이 배터리가 원인인 셈이다. 나머지 28%는 차량 기타부품(커넥터, 운전석 열선 등)에서 불이 난 경우였다. 자동차 화재는 발생하고 나면 대부분 차량 전체로 불이 번지기 때문에 100% 원인을 명확히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분석하는 기관과 분류하는 방법에 따라 통계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보조배터리도 배터리로 묶어서 통계를 내게 되면, 전체 전기차 화재의 약 70%가 배터리에서 발생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충전 중 화재가 주요 원인이다. 충전기나 충전케이블의 결함, 충전 중 차량의 충격이나 낙하, 충전기와 차량의 접촉 불량 등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공식적으로 충전기 이상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류된 것은 없다.
최근 발생한 1건의 사고가 충전 손잡이에서 직접적으로 화재가 시작된 경우가 있었지만, 전체 화재 발생 비율에서 보면 아주 제한적이다. 충격 혹은 충돌 사고로 인해 전기차 배터리가 손상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일반 내연기관 차량과 마찬가지다. 부품이나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분류할 수는 없기 때문에 통계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기타 차량 내부의 전기 배선이나 전자 부품의 결함, 차량의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충전 중 화재’라고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공동주택 주차장에서는 충전이 끝난 후에도 늦은 밤이나 새벽에 차량을 이동시키는 경우는 드물고, 다음날 출근 때까지 그대로 충전기에 물려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재 발생 후 한국전력의 데이터 값을 살펴보면, 충전이 끝난 후 대기 중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충전기에 물려 있는 상태로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충전 중 화재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차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배터리에 대한 인증체계 등 정부의 역할 강화도 중요하지만, 전기차 운전자들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꿀팁이 있다. 급속 충전보다는 완속 충전을 자주이용하고, 최대 충전율을 85% 미만으로 세팅해 놓는다면 전기차 화재의 99%는 예방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충전요금 차별화를 정책으로 고민해 볼 수도 있다. 85% 이상으로 충전할 경우, 요금을 좀 더 비싸게 책정해 자발적인 억제를 유도할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
